지난 6월호에 암과 면역 항암제 이야기를 하고 나서 여러 독자로부터 감상을 전해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4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암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약속한 대로 암을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여러 노력 가운데서 가장 최근의 성과를 소개한다. 바로 ‘암 백신’이다.
이름과는 달리, 암 백신은 암을 예방하는 약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암의 재발을 막는 데에 도움을 주는 약이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몸속에서는 수많은 세포가 실시간으로 분열한다. (개인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그 가운데 몇몇은 암세포로 똬리를 틀 수 있는 돌연변이다.
다행히 그런 돌연변이 대부분은 몸속의 면역 세포가 귀신같이 찾아서 없앤다. 우리를 괴롭히는 암세포는 그런 돌연변이 가운데 면역 세포를 속이는 희한한 능력을 획득한 것이다. 바로 이 능력을 암세포로부터 다시 빼앗아서 몸속 면역 세포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 지난달에 소개한 면역 항암제다.
창의적인 과학자 몇몇은 이 대목에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몸속에 똬리를 튼 암세포에는 정상 세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좀비’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악취’는 그냥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암세포에서는 정상 세포와 다른 냄새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후각이 예민한 개를 이용해 암 환자를 찾는 시도가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이 고약한 암세포 좀비 단백질을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골칫거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중에 암세포가 몸에 똬리를 틀려고 시도할 때, 면역 세포는 곧바로 살생부에 올랐던 좀비 단백질을 기억하고서 그것을 제거할 것이다. 면역 세포가 제대로 기능만 해준다면 같은 암의 재발을 막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게 바로 암 백신의 기본적인 원리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암 백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짐작할 것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의 단백질 조각을 몸에 주입해서 면역을 유도하는 기존의 백신과 암세포의 좀비 단백질 조각을 이용하는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 백신 개발을 선도하는 기업이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으로 유명한 신생 제약 기업 ‘모더나’다.
순서만 놓고 보면, 모더나는 애초 암 백신 개발에 몰두하던 기업이었다. 암세포의 단백질 유전자를 몸속에 집어넣어 면역을 유도하는 방법을 10년 이상 시도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던 차에 신종 바이러스 팬데믹을 맞닥뜨린 것. 이 기업은 암 백신에 활용하려던 방법으로 빠른 시간에 바이러스 백신(mRNA 백신)을 만들어서 대성공을 거뒀다.
모더나는 그렇게 백신을 팔아서 벌어들인 돈으로 암 백신 개발과 임상시험에 나섰고, 운 좋게도 최근에 성과가 나왔다.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면역 항암제로 암세포를 제거하고 나서 (자기한테 맞춤한) 암 백신을 투여한 환자의 재발률이 면역 항암제만 쓴 환자보다 또렷하게 낮았다. 암 백신이 암 환자의 재발을 막는 데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암 백신이 실제로 암 환자에게 널리 쓰이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암 덩어리에 들어 있는 수많은 좀비 단백질(항원) 가운데 어떤 것이 면역 세포의 표적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모더나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을 포함한 여러 제약사에서 앞다퉈 경쟁하고 있으니, 조만간 말기 암 환자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